# 1막 — 재회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두 아이는 서로 다른 도시에서 조용히 버티며 자라났다. 누구에게 기대는 법도 마음을 드러내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고요 속에서 살아남는 법만 익힌 아이들이었다.

열 살이 되던 해 비 오는 날, 두 아이는 처음 마주쳤다. 해도가 말 없이 우산을 씌워준 그 순간, 둘은 처음으로 “이 아이 앞에서는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을 알게 되었다. 이름보다 먼저 안정감이 스며든 만남이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범태가 다시 부산으로 떠나며 둘의 인연은 끊어진 듯 보였다. 해도는 잡지 않았고, 범태는 돌아보지 못했다. 말도 없이 멀어졌지만 짧은 인연은 묘하게 깊게 남았다. 둘의 내면에 처음 생긴 온기가 있기 때문이다.

십대 후반에 이르러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져갔다. 해도는 냉정한 조직 한가운데서 감정을 봉인하며 생존했고, 범태는 가정과 생활이 무너지는 와중에 삶이 기울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범태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주던 그 아이의 얼굴이었다.

죽기 전에 단 한 번만 그 아이를 보고 싶어 범태는 인천으로 향했다.

열아홉의 어느 밤, 두 사람은 다시 마주쳤다. 해도는 범태를 단번에 알아보고 말 없이 외투를 그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그 온기 하나로 범태는 죽음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친 몸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는 해도를 따라갔다.

그날부터 두 사람의 첫 동거가 시작되었다. 해도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일을 조용히 해냈다. 범태는 그 방에서 처음으로 ‘안전하다’는 감각을 배웠고, 해도의 작은 원룸은 서로의 숨을 지켜주는 공간이 되었다.

말은 거의 없었지만 손짓과 눈빛만으로 서로를 알아보았다. 버티며 살아온 두 아이가 처음으로 함께 버티는 법을 배워간 시기였다.

이렇게 두 사람의 인생은 비로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 2막 — 숙청의 밤

십대의 끝에서 가까스로 서로를 붙잡은 두 사람은 잠시나마 안정적인 시간을 보냈지만, 해도의 삶은 이미 조직의 어둠과 맞닿아 있었다. 해도는 천우의 미성년팀에서 냉정한 임무들을 수행하며 살아남았고, 범태는 그가 돌아오는 밤마다 조용히 기다리며 하루를 버텼다. 서로에게 익숙해진 시간이었지만, 그 평온은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

어느 겨울밤, ‘무기 회수’라는 이름의 작전이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해도만 모르는 함정이었다. 미성년팀 전체를 제거하려는 내부 숙청이었다. 해도는 의심하지 않았고,  명령대로 움직였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군 간 총격으로 변했고, 젊은 팀원들은 한 명씩 쓰러져갔다. 배신이었고,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퇴각 중 해도는 팀장을 엄호하다 왼쪽 발목을 밟히고, 이어 무릎에 근거리 총탄을 맞았다. 다리는 흔들렸고 감각이 흐릿해졌다. 팀장은 왼쪽에서 날아온 총탄이 오른쪽 눈을 파괴하며 쓰러졌다. 둘은 살아남은 마지막 두 사람이었고, 계속되는 총성과 어둠 속에서 서로를 끌고 겨우 빠져나왔다.

그 시각, 범태는 해도의 연락이 끊긴 것을 느끼고 불안에 휩싸였다. 불길함이 몸 전체를 죄어왔다. 결국 팀장에게서 온 짧은 전화 한 통은 범태를 병원으로 달리게 만들었다. 응급실 앞에서 그는 피범벅이 된 기현을 붙잡고 해도의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긴 수술 끝에 해도는 의식 없이 누워 있었고, 범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의 곁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 해도가 아주 미세하게 손을 움직였다. 범태의 손등을 쓰다듬듯 지나가는 움직임이었다. 범태가 고개를 들었을 때 해도는 눈을 반쯤 뜨고 있었다. 입모양으로 겨우 말했다. “괜찮아.”

그 말 한마디가 범태의 무너진 심장을 붙잡았다. 해도는 다시 눈을 감았지만 그건 깊은 무의식이 아니라 단순한 잠으로 내려가는 움직임이었다. 살아있다는 신호였다.

그 밤은 두 사람의 삶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미성년팀은 전멸했고, 해도와 팀장만 살아남았다. 조직은 이 사건을 ‘작전 실패 및 순직’으로 발표했지만, 내부에서는 모두 숙청임을 알고 있었다. 해도는 부상으로 더 이상 현장에서 뛰기 어렵게 되었고, 대신 전략과 지휘를 배워야 했다. 

범태에게는 그날의 병원 냄새, 피 냄새, 해도의 숨이 끊어질까 봐 떨리던 순간이 오래 남았다. 해도는 살아 있었지만, 둘 모두의 삶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 사건은 서로에게 의지하던 아이 둘을, 살아남은 사람 둘로 바꾸어놓았다.



# 2.5막 — 욕조 사건

23살의 어느 밤, 두 사람의 일상은 겉으로 보기엔 고요하고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해도는 과장으로 자리 잡으며 경제적·생활적 기반을 마련했고, 범태는 천천히 회복해가며 해도 곁에서 다시 숨을 배우고 있었다. 둘 다 오래 버텨온 끝에 간신히 얻어낸 평온처럼 보였지만, 그 안쪽에는 말해지지 않은 피로와 불안이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범태는 그 시기 내내 해도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과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눌려 있었다.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마음 안에서는 “나 때문에 해도가 무너지는 게 아닐까” 하는 왜곡된 결론이 반복되었다. 해도는 범태가 보여주는 겉의 평온만 믿었고, 그 안쪽의 흔들림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범태는 숨겼고, 해도는 조용히 믿었다. 두 사람 모두 잘못이 없었지만, 이 균열은 그날 밤 폭발했다.

해도가 외근을 나갔던 밤, 범태는 별다른 예고 없이 욕실 문을 닫고 물을 채웠다. 스스로를 아프게 하려는 선택이었고, 그것은 범태 인생에서 처음으로 “이제는 아무도 피해주지 않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절망의 결론이었다. 그 어떤 말도,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손목을 깊게 긋고 물속으로 몸을 누였다.

그 시각, 해도는 회의실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문서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숨이 갑자기 얕아지며 손끝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이유 없는 위험 신호였다. 해도는 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밖으로 걸어 나갔다. 누가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고, 차량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움직였던 순간이었다.

집 문은 잠겨 있지 않았지만, 욕실 문만 잠겨 있었다. 해도는 문고리를 단 한 번 당겼고, 힘을 거의 주지 않았는데도 문이 부서지듯 열렸다. 그 안에는 물속에 잠겨 있는 범태가 있었다. 해도는 생각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젖는 것도, 다리 통증도, 위험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두 팔을 물속으로 밀어 넣어 범태를 끌어안았다.

범태의 피부는 차가웠고 숨은 가늘었으며 눈은 떠 있지만 초점이 없었다. 해도는 평소처럼 침착할 수 없었다. 그의 가장 안정적인 사람에게서 처음으로 감정이 부서지는 모습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토끼… 숨 쉬어.”

해도는 범태를 끌어안은 채 욕실 바닥에 주저앉았고, 떨리는 손으로 체온을 올리며 119를 불렀다. 범태의 머리를 가슴으로 당겨 안는 동안 해도는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다. 표정만 보면 누구도 그가 해도라는 사람이라고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그는 전략가도, 분석가도 아니었고, 단지 범태가 사라질까 봐 숨이 끊어지는 사람 하나였다.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범태는 의식이 흐릿했지만 살아 있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뒤 범태의 상태는 안정됐고, 해도는 젖은 셔츠도 갈아입지 않은 채 곁을 지켰다. 범태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해도의 손등이었다. 떨리면서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 손.

이 사건 이후 해도의 사랑은 완전히 변했다. 조용하고 섬세했던 돌봄은 ‘절대 놓치지 않는 사랑’으로 바뀌었다. 약 하나, 신호 하나, 숨소리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게 되었고, 범태의 감정이나 몸의 변화는 최우선의 기준이 되었다. 범태도 해도에게 더 속마음을 드러내게 되었고, 숨기고 무너지는 방식을 점차 배워나갔다.

욕조 사건은 두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한 밤이었다. 살아남은 사람 둘이 아니라, 서로를 지켜내는 사람 둘로 바뀐 순간이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이후의 해범은 전혀 다른 모양이었을 것이다.



# 3막 — 두 번째 부상

27살의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해도는 원래 예정에 없던 외부 현장 조율을 위해 잠시 밖으로 나갔다. 이미 다리가 좋지 않아 오래 서 있거나 이동하는 일은 조심해야 했지만, 그날은 상황이 복잡해져 해도가 직접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비가 내리던 길은 젖어 있었고, 어둠은 깊었다.

작전이 마무리되고 돌아가려던 순간, 해도의 왼쪽 다리 아래가 미끄러지듯 흔들렸다. 처음엔 늘 있던 통증 정도라 생각했지만 균형을 잃은 발이 돌부리에 걸리며 무릎이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꺾여버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해도는 그 감각을 단번에 알았다. 첫 번째 부상과는 전혀 다른, 되돌릴 수 없는 느낌이었다.

통증은 크지 않았지만 다리가 즉시 말을 듣지 않았다. 무릎 아래 감각이 희미해졌고 발목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해도는 상황을 분석하려 했으나 몸이 먼저 굳었다. 비가 얼굴을 적시고 손이 떨려 왔지만, 그는 그저 숨을 고르게 들이쉬며 다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다리는 그대로였다. 움직이지 않았다.

해도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를 일으켜 차량 쪽으로 기어가듯 이동했다. 비는 계속 내렸고, 젖은 손으로 차 문을 붙잡고 몸을 끌어올리며 해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절망이 아니라, 범태를 생각하는 버티기의 순간이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범태는 이미 달려오고 있었다. 해도를 발견한 순간 범태의 표정은 흔들렸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첫 번째 부상과 달랐다. 이번엔 범태가 울지 않으려, 해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고 있었다. 범태는 젖은 해도를 안아 들며 말했다. “괜찮아. 여보, 나 여기 있어.”

그 말에 해도는 처음으로 눈을 제대로 떴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범태의 목소리는 깊게 들렸다. 해도는 말하지 못했지만, 범태의 손이 닿는 곳마다 숨이 다시 돌아왔다. 서로의 위치가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기도 했다. 예전엔 해도가 범태를 붙잡았다면, 이번에는 범태가 해도를 붙잡고 있었다.

검사 결과는 간단하지만 잔혹했다. 첫 번째 부상으로 약해진 신경이 다시 손상되면서 왼쪽 무릎 아래 감각이 크게 떨어졌고, 발목부터 발끝까지는 거의 완전한 마비 상태였다. 수술이 아닌, 긴 재활과 보조장치가 앞으로의 길이라는 의사의 말에 범태는 손을 꼬집듯 쥐었다. 해도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날 비가 내리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던 결론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절망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과거처럼 무너지는 밤이 아니었다. 해도는 휠체어에 앉아 범태의 손을 조용히 잡았고, 범태는 그 손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범태의 눈빛은 흐려지지 않았고, 해도의 숨도 떨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 채 말없이 버텼다.

집으로 돌아온 뒤, 서재에는 새로운 보조장치와 맞춤 재활 기구들이 준비되었다. 해도는 휠체어 중심의 생활로 전환했지만 일상의 모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범태는 해도의 옆에서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해도 역시 범태에게 미안함 대신 함께 살아갈 방법을 더 많이 떠올렸다.

이 부상은 해도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았지만, 둘 사이의 관계에서 무너뜨린 것은 없었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붙잡는 모양이 더 명확해졌다. 해도는 범태를 지키는 사람에서, 범태에게 지켜지는 사람이 되었고, 범태는 무너지던 아이에서 해도를 붙잡는 어른이 되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균형 위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게 된다. 더 약해졌지만 더 단단해진, 두 사람만의 삶이었다.



# 현재 시점 — 서로의 삶을 함께 세우는 시간

해도가 전략이사로 승진한 뒤, 두 사람의 일상은 더 깊은 안정과 새로운 무게 속에서 흘러가기 시작했다. 부상으로 몸은 더 약해졌지만, 해도의 영향력과 자리매김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천우의 전체 전략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고, 회의실에서 손 하나로 수십 명의 움직임을 바꾸는 인물이 되었다. 움직이는 폭은 줄었지만, 흔들림 없이 중심에 서는 법을 배운 셈이었다.

범태는 그런 해도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예전처럼 무너지는 해도는 없었고, 예전처럼 무너지는 자신도 없었다. 두 사람은 오래 걸려 손에 넣은 안정 속에서 각자의 일을 해냈다. 해도는 새벽에 일어나 서재에서 문서를 검토했고, 범태는 작업실에서 그림과 손기술을 다듬으며 하루를 보냈다. 두 공간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었다. 문은 항상 반쯤 열려 있었고, 그 사이로 둘의 숨이 오갔다.

천우 오벨리스크의 집은 조용했다. 따뜻한 조명과 길게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두 사람의 삶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해도는 휠체어로 부드럽게 이동하며 커피를 내렸고, 범태는 그 향기를 따라 부엌으로 나와 해도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곤 했다. 식탁은 늘 둘이 마주 앉는 자리였고, 말이 많지 않아도 분위기만으로 서로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해도의 왼쪽다리는 무릎 아래로 거의 감각이 없었고 발목과 발끝은 완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둘의 삶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범태는 자연스럽게 해도의 옆에서 휠체어를 잡아주었고, 해도는 그 손을 밀어내지 않았다. 예전의 해도였다면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을 거리감과 자세조차 이제는 둘 사이의 당연한 흐름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지며 두 사람의 삶도 깊어졌다.

밤이 되면 해도는 서재 일을 마무리하고 거실로 나왔다. 범태는 그 시간에 맞춰 따뜻한 담요를 펴놓고 해도를 기다렸다. 둘은 나란히 앉아 조용한 음악을 틀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말 없이 손만 잡고 있어도 충분한 시간이었고, 그 조용함 속에서 해도는 오랜 시간 지켜온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범태도 마찬가지였다. 무너지고 흔들렸던 마음은 해도의 옆에서 다시 자리를 찾았다.

가끔은 불안이 찾아오기도 했다. 범태의 기분이 흔들리는 날이면 해도는 말보다 손으로 먼저 반응했다. 손등을 눌러주거나, 숨을 맞춰주거나, 옆에 조용히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해도에게 범태는 지켜야 하는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였고, 범태에게 해도는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서 이제는 함께 걷는 사람이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약함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살아갔다.




그리고 지금.  
28살의 두 사람은 일상을 살고 있다.  
거창하지 않지만 단단한 하루들이다.  
아침에 함께 일어나고, 각자의 일을 하고, 다시 한 공간으로 돌아오는 삶.  
몸은 불완전하고 마음도 완벽하진 않지만,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아왔던 두 사람에게는 지금의 평온이 가장 큰 기적이었다.

과거의 폭풍과 상처는 여전히 흔적을 남기지만, 이제 그것들은 두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손을 더 확실히 잡게 만드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해도는 여전히 범태의 숨을 들으며 일하고, 범태는 해도의 바퀴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낸다.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일은 없다.

이렇게 현재 시점의 장은 이어지고 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는 생존이 아니라 생활이고, 생활이 아니라 함께 늙어가는 시간이다.  
해도와 범태, 두 사람의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다.